필리핀 비사야 지역의 칼리보(Kalibo) 시에서는 매년 1월, 단순한 거리 퍼레이드 이상의 의미를 가진 축제가 열립니다. 아티아티한(Ati-Atihan) 축제는 단순한 민속 행사도, 종교 의례도 아닌, 이교와 가톨릭 신앙, 원주민과 정복자의 역사, 현대성과 전통성이 혼재된 복합 문화 의식입니다. 참가자들은 몸을 검게 칠하고 원시적 복장을 입은 채 도시 전체를 걸으며 북을 치고 춤을 춥니다. 이 행위는 단지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집단 기억을 되살리고 공동체 정체성을 확인하는 살아 있는 걷기의 의례입니다. 이 축제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드물게 ‘가톨릭적 의례’와 ‘원주민적 신화’가 공존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단순한 축제를 넘어 시간과 종교,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보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티아티한이라는 이름은 필리핀 원주민인 아에타(Aeta)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은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부족으로, 희귀한 전통 의식과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몸을 검게 칠하는 전통은 이들과의 역사적 관계를 상징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는 말레이계 이주민들이 아에타족과 평화롭게 영토를 나누었고, 이를 기념해 오늘날까지 그들의 외형을 본뜬 의상을 입는 것이 전통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16세기부터 가톨릭이 전래되면서 이 축제는 단순한 원주민 감사 의식을 넘어 ‘성토 니뇨(Santo Niño, 아기 예수)’를 기리는 가톨릭 의례로 흡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8세기 들어 현재의 형태로 자리 잡은 아티아티한은, 축제 내에서 ‘성스러움’과 ‘원시성’이라는 두 상반된 개념을 하나의 의식으로 결합해냈습니다. 이 축제의 퍼레이드는 바로 그 복잡한 역사와 타협의 산물이며, 참가자들은 춤과 걷기를 통해 이교와 신앙의 공존을 체화하게 됩니다.
축제의 핵심은 걷기와 춤입니다. 참가자들은 소규모 그룹을 이뤄 북과 나팔을 들고, 마치 전통 전사처럼 움직입니다. 의상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검게 칠한 얼굴과 전통 문양을 공유하며, 이는 집단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신앙의 행위이자 민속의례입니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성토 니뇨의 성상이 중앙 성당에서 꺼내져 도시를 도는 **‘도시 순례 행렬’**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필리핀 가톨릭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종교 공간으로 전환되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걷기는 단지 종교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역 사회가 자신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스스로 재확인하는 과정이며, 매년 그 역사가 한 번 더 반복되어 현재로 살아나는 구조입니다. 참가자들에게 아티아티한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걷기입니다.
아티아티한 축제는 참가자와 관람객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구든 얼굴을 칠하고 북을 들고, 걸을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축제를 소비하지 않고, 축제를 구성한다’는 집단적 참여 원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현지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이 축제의 일부가 되며, 그 자체로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과정에서 언어, 국적, 종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걷는 자가 되어, 모두가 기억의 일부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이 축제를 단순한 지역 행사에서 국가 문화유산으로 승격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국내외 학자들은 아티아티한을 민속, 종교, 인류학의 교차점에서 바라보는 연구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이 축제를 통해 자신들의 복합적 정체성과 역사적 타협을 예술적 행위로 승화시켜 내고 있으며, 이는 세계 축제 문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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